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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소리 그윽한 옛마당

    원주 미륵산마을

    흥겨운 풍물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우리마을
    황산사유래지비 황산사유래지비
    · 관광지
    황산사유래지비
    · 마을명
    강원 원주 미륵산마을
    · 유형
    사찰/종교유적
    · 위치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비문

    황산사의 유래는 서기 935년(단기 3268년) 경순왕이 학수사를 창건한 이래 1591년부터 1643년까지 영남관찰사로 재임한 경순왕의 후손 '하담공시양'이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이곳 학수사우가 전소된 고자암에서 초상화 한본을 구하여 간후 원주지방 김필진 목사가 녹봉을 털어 1635년부터 1677년까지 숙종 3년 정사년에 김무진과 성탄스님이 대웅전각을 중창하고 1691년까지 요사체를 증창하였다.
    이무렵 1677년 황산엽사가 입욕하여 가람이름을 바꾸었으니 이 때에 황산사가 된것이다.

    이후 1697년 정축년 숙종 23년에 또 본 전각이 소실된 것을 1737년 정사년 영조 13년 봄에 다시 삼창을 하였으나 이후 본 전각과 요사체까지 전소된 뒤 유허지가 된 것이다.

    한편 용화산 정상 미륵불상 참배당으로 고자암지에 작은 석조막이 있었는데 이곳에 황산고찰을 복원하겠다고 1982년초 헐은 후 그 석재와 단청석가래만 썩고있을 분, 나미여초 사탑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강원문화재 제22호로 용화산정상에 조각된 미륵불상만 지키고 있으며 계곡중턱에 부도 2기는 학가조천서천국이요 서천응순서역국 이란 문장이 학서당과 서응당의 부도로서 귀래면 주포리 사내동 절안부터 용화산 정상까지 한마을 모두가 학수사지였음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주포리 142번지 570평 대지에는 학수사지였음을 추정할수 있는 주초석이 고대건축양식 배열순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고정이 있었다는 밭머리에는 맑은 찬샘이 오늘도 한결같이 흐르고 있다.

    삼국통일로 찬연했던 근천년의 신라사로 992년의 손국행적이 여기에 있고 경순왕의 손위로 끝난 후삼국의 북원(원주)문화역사권의 국사중심지로서 신라대장군 양길을 비장으로 임용한 신라서남부통지휘 병마제치지절도독 전무공등주군사행 전주자사겸어사 중승상주국한 남군개국공 이견훤의 전역지 견훤산성이 문막에 있고 치악산 영원산성에 웅거했던 양길대장군의 비장 위병장이 태봉국대왕이 된 김궁예의 출병지 석남사지가 신림에 있으며, 그의 정기대장 왕건의 승전으로 고려국을 창업한 왕건태조의 전초기지 건등산이 문막에 있고 신라의 공신 이견훤이 후백제대황이 된후 그로부터 신라왕위를 수계한 김부대왕(경순왕)의 손국행적이 후삼국의 유사로 이사지와 더불어 전세계의 강대국 고려국사유지로서 우리 원주 에 있으니 이제 그 유사를 우리학계에 광대하게 전하고 후삼국이 고려강대국 묘상지로 이어진 국사의 대학습장으로 영구히 보존하고자 이 가람창사 1068년 이요 고려개국사 1085년만에 사탑고적고와 사찰사기에서 근발하여 국사편찬위원회 편기 81070~168호로 학술고증을 받고 진주김 윤호씨가 비지를 헌공하여 강원문화예술진흥지원 기금 일부와 고려개국지(후삼국)보존위원회의 각 임 회원의 뜻으로 고려개국일인 음 6월15일을 맞아 이 비를 세운다.